
파이낸셜뉴스, 이상미 유럽문화예술콘텐츠연구소장
오피니언면 새 필진 합류
창간 25주년 맞아 오피니언면 대폭 개편, 인문 칼럼 필진으로 참여
파이낸셜뉴스가 2025년 9월 2일자부터 오피니언면을 대폭 개편하면서, 이상미 유럽문화예술콘텐츠연구소장이 인문 칼럼 필진으로 새롭게 합류했다.
창간 25주년을 맞은 파이낸셜뉴스는 “폭넓은 시각, 날카로운 진단… 오피니언에 깊이를 더합니다”라는 슬로건과 함께 오피니언 지면을 전면 재편했다. 이번 개편에서는 급변하는 국내외 정치·경제 상황을 통찰력 있게 분석·진단하는 역량 있는 각계 전문가 24명이 새로 참여하게 됐다.
새로운 오피니언면은 크게 세 가지 섹션으로 구성됐다. ‘fn광장’에는 강성진 고려대 교수, 김경준 전 딜로이트컨설팅 부회장, 박기순 한중경제포럼 회장, 손병두 토스인사이트 대표, 윤의준 한국공학한림원 회장 등이 참여한다.
정치·외교·안보 분야에서는 박영준 국방대 국가안보문제연구소장, 신율 명지대 교수, 윤덕민 한국외대 석좌교수, 이근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 주재우 경희대 교수가 칼럼을 담당한다.
인문 칼럼 분야에는 이상미 유럽문화예술콘텐츠연구소장, 곽금주 서울대 명예교수(심리학), 조성관 국제지니어스연구소장이 새롭게 참여한다. 이상미 소장의 합류는 파이낸셜뉴스가 경제 전문지로서의 정체성을 유지하면서도 문화예술과 인문학적 통찰을 아우르는 종합적 시각을 제공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준다.
아트테크 전문가로서의 독특한 관점 기대
이상미 소장은 아트테크(Art & Technology) 분야의 대표적 전문가로 활동하고 있다. 2010년 프랑스 정부로부터 외국인 최초 수석으로 문화자산 전문가 자격증을 취득했으며, 현재 이상아트㈜ 대표이사이자 유럽문화예술콘텐츠연구소 소장, 백남준포럼 이사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그는 2021년 『건축은 어떻게 전쟁을 기억하는가』로 세종도서에 선정된 바 있으며, 최근 2025년 7월 『AI 시대의 아트테크』를 출간해 인공지능 시대 미디어아트의 문화적 가치를 탐구했다. 2019년부터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이데일리, 이투데이 등에 ‘4차 산업혁명과 예술’ 관련 칼럼을 기고해 온 경험도 갖고 있다.
파이낸셜뉴스의 이번 오피니언면 개편은 경제 전문지로서의 정체성을 유지하면서도 문화예술, 인문학적 관점을 통해 사회 현상을 다각도로 분석하려는 시도로 평가된다. 이상미 소장의 합류로 AI와 디지털 기술이 예술과 문화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전문적 분석을 통해 독자들에게 새로운 시각을 제공할 것으로 기대된다.
AF 에엪 독자소통부 press@artfr.co.kr
◎ AF(에엪) https://artfr.co.kr
기사 원문 : https://artfr.co.kr/298

[파이낸셜 뉴스 fn광장]
세종대왕의 한글, AI시대 문화자산
한글의 자음과 모음을 조합해
무한한 변형 창조…밈의 원형
‘ㅋㅋ’ ‘댕댕이’ 전세계에 확산
한글 밈코인 새로운 영역 개척
저작권 귀속은 여전히 불명확
투명한 분배·보호장치 갖춰야
훈민정음 반포 579년이 흐른 지금, 한글은 더 이상 과거의 언어유산이 아니다. 세종대왕이 백성을 위해 창제한 문자는 오늘날 디지털 문명 속에서 끊임없이 재해석되고 확장되는 살아 있는 문화자산으로 진화하고 있다.
최근 넷플릭스 영화 ‘케이팝 데몬 헌터스’의 글로벌 흥행은 한국어와 한국 문화의 세계적 파급력을 다시 입증했다.
한글은 더 이상 지역적 문자가 아니라 세계가 공유하는 문화의 언어로 자리 잡고 있다. 활자에서 출발한 문자가 온라인 시대에 이르러 ‘밈’이라는 디지털 소통의 코드로 변모했으며, 그 최전선에는 밈코인(meme coin)이 있다.
밈코인은 농담과 유행에서 출발했지만 그 가치를 결정짓는 것은 기술이 아니라 공감과 확산의 속도다.
누구나 이더리움 기반으로 손쉽게 발행할 수 있기에 진입장벽은 낮고, 참여 속도는 폭발적이다. 그 결과는 놀랍다.
글로벌 데이터 플랫폼 코인게코에 따르면 2025년 9월 기준 밈코인의 시가총액은 약 728억달러, 전체 가상자산의 2~3%를 차지한다. 한국 또한 하루 거래액만 3조~8조원, 투자자 수는 700만~800만명에 이른다. 농담처럼 시작된 토큰이 이제 국가 경제지표를 흔드는 규모로 성장한 셈이다.
이 흐름 속에서 한글의 잠재력은 더욱 빛난다. 자음과 모음을 조합해 무한한 변형을 창조하는 구조는 그 자체가 밈의 원형이다. ‘ㄱㄱ’ ‘ㅋㅋ’ ‘댕댕이’ 같은 단순한 표현이 이미 전 세계 밈 문화의 언어 코드로 확산되고 있다.
도지코인이나 시바이누가 글로벌 시장을 주도했다면, 한글 밈코인은 로컬 정체성과 창의성을 결합한 새로운 디지털 문화영역을 만들어가고 있다. 한글은 이제 단순한 문자가 아니라 디지털 커뮤니티를 결속시키는 상징이자 문화적 자산이다.
밈코인의 진정한 힘은 돈이 아니라 놀이와 참여의 문화에 있다. 가격의 등락조차 유머와 풍자로 소비하며 공동체적 유희를 즐긴다. 경제현상이자 사회적 놀이이며, 디지털 세대의 자율적 문화경제다. 그러나 이 열기는 동시에 양날의 검이다.
밈코인 시장은 가치보다 유행의 속도에 좌우되고, 러그풀과 같은 사기사건이 잇따른다. 2017~2021년 국내 가상자산 범죄 피해액은 4조7000억원, 2022년까지 누적 5조원을 넘어섰다. 한글이 투기의 소모품으로 소비될 위험도 커졌다.
여기에 인공지능(AI)이 던지는 과제도 무겁다. 생성형 AI는 훈민정음의 조형 원리를 학습해 디자인과 시각예술을 만들어내지만, 저작권 귀속은 여전히 불명확하다. 누가 창작자인가, 누구의 권리인가라는 질문이 해결되지 않으면 AI는 혁신의 동력이 아니라 분쟁의 불씨가 될 수 있다.
이제 필요한 것은 속도가 아니라 제도적 신중함과 문화적 균형감이다. 밈코인을 포함한 가상자산 시장에 대해 금융당국은 공시의무 강화와 프로젝트 감사제 도입을 검토해야 한다.
문화체육관광부는 AI 협업 창작물의 저작권 귀속 기준과 공정분배 지침을 마련함으로써 예술가의 권익을 보호하고, 동시에 신기술 기반 창작을 장려해야 한다.
또한 정부 차원에서 ‘K-디지털밈 프로젝트’를 추진해 한글과 한국 문화의 언어적 상징성을 활용한 글로벌 밈 콘텐츠를 지원한다면, 투기 중심의 코인 문화를 창의 중심의 문화산업으로 전환할 수 있을 것이다.
핵심은 기술과 문화를 구분하는 일이다. 밈코인이 문화적 자산으로 성장하려면 투명한 분배구조, 스마트 컨트랙트 감사, 법적 보호장치가 반드시 병행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문화는 사라지고 투기만 남는다.
세종대왕이 백성을 위해 창제한 한글은 579년이 지난 오늘도 가장 혁신적인 언어 실험의 중심에 서 있다. 디지털 문명과 AI 시대의 문턱에서 우리는 다시 묻는다. 한글을 투기의 장난감으로 소비할 것인가, 아니면 사람과 문화를 잇는 건강한 놀이터로 승화시킬 것인가.
답은 분명하다. 한글의 미래는 기술이 아닌 사람의 손에 달려 있다. 지금 필요한 것은 기술을 앞세운 속도가 아니라 문화를 지키는 방향감각이다. 그것이 바로 우리가 세종의 뜻을 오늘에 되살리는 길이다.
한글은 언제나 사람을 위한 글자였고, 지금도 사람을 위한 문화여야 한다.
※ 본 칼럼은 파이낸셜 뉴스에 ‘fn광장’으로 게재되었습니다.
칼럼 원문 : https://www.fnnews.com/news/202510091846366874

[파이낸셜 뉴스 fn광장]
예술품 조각투자 눈앞… K컬처 날개 달까
조각투자 플랫폼의 인가 심사 진행
금융위 연내 사업자 최대 2곳 선정
표준화된 감정평가·공시기준 도입
투기가 아닌 투자구조를 설계해야
금융위-문체부 상시협의체 구성
예술생태계의 금융종속 막아야
한 점의 예술품에 백 명이 주인이 되는 조각투자 현실이 본격화하고 있다. 조각투자는 하나의 실물자산을 지분으로 나눠 여러 투자자가 공동 소유하고 수익을 배분받는 방식이다. 미술품 조각투자의 경우 가치 상승분을 지분율에 따라 나누는 구조인데, 이 모델이 이제 제도권 진입을 눈앞에 두고 있다. 조각투자는 그간 규제 사각지대에 머물러 왔지만, 금융당국이 인가제를 본격 가동하면서 시장의 향방이 결정되는 중대한 분기점에 서게 됐다. 단순한 플랫폼 경쟁이 아니라 한국 문화자산의 미래 구조를 좌우하는 문제이기에 더욱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
2025년 11월 현재, 조각투자 플랫폼의 인가 심사가 진행 중이며 금융위원회는 연내에 최대 두 곳의 사업자를 선정할 계획이다. 국내 업체들은 대부분 컨소시엄 형태로 참여 의사를 밝혔는데 금융위원회는 시장 초기에 유동성 분산을 방지하고 안정성을 확보하기 위해, 다수 증권사의 참여와 신속한 서비스 실행 능력, 중소형 증권사의 참여 여부를 핵심 기준으로 삼고 있다. 이번 심사는 각 컨소시엄의 구성에 따라 앞으로 조각투자 시장의 권력구조와 자금 흐름이 크게 달라질 수 있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표면적으로는 기술과 금융의 결합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한국이 문화자산을 어떻게 제도권 안에서 다룰 것인지에 대한 선택이다. 미술품, 음원, K콘텐츠 지식재산권(IP) 등 문화자산이 금융화되는 과정에는 단순한 규제가 아닌 철학적, 문화정책적 고민이 필요하다. 문화자산은 화폐적 가치만으로 설명되지 않기 때문이다. 특히 미술품은 예술적 맥락, 작가의 서사, 문화적 파급력까지 포함해 종합적으로 판단해야 하는데 이런 다층적 가치를 숫자로 축약할 때 발생하는 왜곡 가능성은 결코 작지 않다.
가장 먼저 부딪히는 벽은 가치평가다. 기업실적이나 공시지가처럼 객관적 기준이 있는 주식·부동산과 달리 미술품과 저작권은 평가의 정합성을 담보하기 어렵다. 올해 상반기 국내 미술품 경매 시장은 572억원 규모로 전년 대비 37% 축소됐지만 조각투자 시장은 2030년 300조원대 성장 전망을 갖는다. 반면 온라인 경매 거래액은 62억원으로 늘어 양극화가 뚜렷해졌다. 경매시장 축소와 온라인 성장의 괴리는 조각투자 시장의 구조적 위험을 드러낸다. 정보 비대칭과 감정평가 기준 부재는 필연적으로 가격 왜곡과 거품을 키우게 된다. 특히 일부 플랫폼이 마케팅 용도로 희소성과 투자성을 과도하게 강조할 경우 시장은 손쉽게 투기화될 수 있다.
또한 이 시장이 문화 향유의 민주화가 아니라 투기장으로 변질될 가능성이다. 미국 마스터웍스는 블루칩 미술품 중심으로 성장했지만 신진 작가는 철저히 배제됐다. 싱가포르 위 아트 콜렉터스는 소액 접근성을 높였으나 유동성 부족으로 환금불능 문제가 반복됐다. 우리나라에서도 자금이 유명 작가 중심으로만 쏠리고, 신진 창작자는 구조적으로 소외될 위험이 크다. 더군다나 2017년부터 2021년까지 국내 가상자산 범죄 피해액이 5조원을 넘었다는 사실은 규제 공백 속의 신규 금융상품이 시민에게 어떤 피해를 가져올 수 있는지 분명히 보여준다. 조각투자 역시 제대로 된 규율체계가 갖춰지지 않는다면 같은 문제를 반복할 가능성이 높다.
문화부처의 역할이 비어 있다는 점도 간과할 수 없다. 인가 과정은 금융위가 주관하지만 미술품 진위 감정, 저작권 적법성, 문화적 가치 보존은 금융논리로만 해결될 수 없다. 2026년 시행될 미술진흥법의 추급권 제도 역시 조각투자 플랫폼 적용방식이 미정이다. 문화체육관광부의 참여가 배제된 제도화는 예술 생태계 보호라는 본래 목적을 약화시킬 수 있다. 지금처럼 부처 간 역할이 분리된 상태에서는 문화적 가치가 금융의 논리에 종속될 수밖에 없다.
지금 필요한 것은 첫째, 표준화된 감정평가와 공시기준을 도입해 시장의 투명성을 확보해야 한다. 둘째, 투기가 아닌 지속가능한 투자구조를 설계해야 한다. 추급권을 플랫폼에 연동해 수익이 창작자에게 환류되는 구조가 필수다. 셋째, 금융위와 문체부가 상시협의체를 구성해 금융성과 문화성이 균형을 이루도록 해야 한다. 문화와 금융이 충돌하는 영역일수록 부처 간 공동 거버넌스가 중요하다.
조각투자 인가는 새로운 금융상품을 승인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 K컬처 자산을 누가, 어떻게 소유하고 분배할지 결정하는 문화 민주화의 분기점이다. 기술과 자본 위에 문화적 성찰과 공적 책임이 더해질 때에만 이 시장은 지속가능한 기반을 얻을 수 있다.
※ 본 칼럼은 파이낸셜 뉴스에 ‘fn광장’으로 게재되었습니다.
https://www.fnnews.com/news/202511201840014415
[이데일리]
[이상미의 AI아트] 백남준과 사유하는 힘

백남준 ‘TV 부처’(1974), 석불좌상과 TV 모니터, 폐쇄회로카메라.
AI가 예술 창작의 주체로 부상하면서, 우리는 기술혁신이 아닌 철학적 질문과 정책적 대응의 교차로에 서 있다. 창작의 주체는 누구인가? 예술의 본질은 무엇인가? 이러한 질문은 이제 학술 담론이 아니라 제도 설계와 교육 정책의 문제로 전이되고 있다.
2022년 제이슨 앨런은 이미지 생성 AI 미드저니(Midjourney)를 활용해 만든 ‘우주 오페라 극장’로 콜로라도 주립박람회 디지털아트 부문에서 1위를 차지했다. 그러나 2023년 2월, 미국 저작권청(USCO)은 인간 저작성이 결여되었다는 이유로 해당 작품의 저작권 등록을 거부했다. 기술 기반 예술이 제도적으로 받아들여지지 않는 현실은, 기술의 진보와 법적 기준 사이의 간극을 여실히 드러낸다.
철학적으로, AI 예술은 여전히 인간 사유의 깊이를 담아내지 못한다. 백남준은 이미 1980년대에 기술을 도구가 아닌 철학적 개입의 매개로 다뤘다. ‘TV 부처’(1974)는 불상과 CCTV를 병치해 기술과 영성의 대화를 시도했고, ‘굿모닝 미스터 오웰’(1984)은 전 세계를 위성으로 연결해 냉전 이념을 무력화했다. 반면 오늘날 AI는 맥락 없이 이미지를 생성할 수는 있어도, 그로 인해 세계와 사유를 연결하지는 못한다.
객관적 데이터도 이를 뒷받침한다. 2023년 유니버시티 칼리지 런던(UCL)과 옥스퍼드 대학의 공동연구는 AI가 보조한 작품은 창의적 독창성 측면에서 평균 25% 낮은 평가를 받았다고 발표했다. 이는 AI가 기계학습을 통해 기존의 스타일을 반복 재현하는 데 강점을 가지나, 의미 생성과 새로운 시선의 제시에 있어 한계가 있음을 입증한다.
이 논의는 단순한 미학의 문제가 아니라 정책 설계의 문제로 이어진다. 2018년, 프랑스의 아트 콜렉티브 오비어스(Obvious)가 AI가 생성한 초상화 ‘에드몽 드 벨라미’를 크리스티 경매에서 43만 2,500달러에 판매하며 큰 주목을 받았지만, 이 작품의 알고리즘은 다른 작가가 개발한 GAN(생성적 적대 신경망)을 차용한 것이었고, 이에 따른 저작권 귀속 문제가 논쟁이 됐다. 법과 제도가 AI 예술을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에 대한 가이드라인은 여전히 불완전하다.
문화예술계의 응답도 다양하다. 2024년 퐁피두센터는 ‘아포페니아, 중단들’(Apophenia, Interruptions) 전시를 통해 AI의 오류와 비논리성을 창작 자원으로 활용했다. 홀리 헤른던과 매트 드라이허스트의 ‘I’M HERE’(2023)는 AI의 실패를 감성적 기호로 전환했다. 에릭 보들레르는 네 대의 AI가 만든 무작위 서사로부터 ‘이야기 없음의 이야기들’ 을 구성했다. 한국 국립현대미술관 청주관도 2024년 ‘인공적인 세계란 무엇인가’를 통해 인간과 기술의 공존 가능성을 실험했다.
교육정책도 철학적 관점을 반영할 필요가 있다. 미국 크리에이티브 스터디즈(CCS)는 AI 사용을 아이디어 구상에만 제한하고, 모든 시각 자료의 출처 표기를 의무화하는 커리큘럼을 운영 중이다. 캐나다 요크대는 디지털 아트 인문융합 프로그램에서 철학, 스토리텔링, 기술을 통합하며 기술을 통한 인간 이해를 교육의 핵심으로 삼는다. 단순한 기술 교육이 아닌 비판적 기술 문해력의 조기 함양이 중요하다.
정책은 예술가에게 질문하고 실패할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 AI 시대에 실험은 곧 창작이다. 따라서 공공영역에서 아트앤테크랩(Art & Tech Lab) 등 실험 중심 창작 공간을 조성하고, 저작권 체계 또한 인간과 AI의 협업 창작을 반영하도록 개정해야 한다. 중등 교육과정에는 인공지능과 미학 같은 교과를 정규 편성해, 예술이 기술의 수동적 소비자가 아닌 재구성의 주체로 서도록 해야 한다.
백남준은 말했다. “예술가는 미래를 사유하는 존재다.” 기술은 정교해지지만, 질문을 던지는 힘은 인간의 몫이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더 빠른 생성이 아니라, 더 나은 질문이다. 예술은 생산이 아니라 사유이며, 그 시작과 끝은 인간이다.
※ 본 칼럼은 이데일리에 ‘이상미의 AI아트’로 연재되었습니다.
[이투데이] 논현광장
이상미의 예술과 도시
‘국중박’이 펼친 공공전시의 새 지평
보통사람 고뇌 조명한 ‘이순신展’
전쟁영웅 아닌 인간주체로 불러내
역사위인 너머의 성찰기회 마련해

‘우리들의 이순신展’ 전시 포스터.
이미지/국립중앙박물관
국립중앙박물관(‘국중박’)에서 열리는 이순신 특별전은 영웅을 기념하는 전시라기보다, 한 인물을 매개로 오늘의 사회를 비추는 공공적 장치에 가깝다. 이 전시는 이미 완성된 성웅의 형상을 반복 재현하지 않는다. 대신 기록과 사료를 통해 판단하고 책임졌던 한 인간의 궤적을 전면에 놓는다. 전시장에 들어서는 순간 관람객은 승전의 서사보다 질문 앞에 서게 된다.
탄신 480주년과 광복 80주년을 계기로 기획된 이번 전시는 난중일기, 임진장초, 이충무공전서, 장검 등 국보와 보물급 유물 300여 점을 통해 이순신의 삶을 입체적으로 조망한다. 전투 장면의 극적 연출을 최소화하고 필체와 문서, 생활 유물을 중심에 둔 구성은 분명한 기획 의도를 드러낸다. 이는 이순신을 전쟁의 상징으로 소비하기보다, 기록을 통해 판단하고 책임을 감당했던 주체로 다시 읽게 하려는 선택이다. 그 결과 관람의 중심은 결과에 대한 감탄에서 판단의 과정에 대한 성찰로 이동한다.
전시의 핵심에는 난중일기가 놓인다. 이 기록은 승리를 기념하는 연대기가 아니라, 불안과 두려움, 선택의 흔적이 겹겹이 쌓인 사적 문서다. 정치적 모함과 파직, 백의종군이라는 굴욕의 시간은 문장의 밀도와 여백, 반복된 수정 속에 남아 있다. 김훈의 소설 칼의 노래가 문학적으로 복원했던 이순신 개인의 고독과 책임은, 이번 전시에서 실제 사료를 통해 다시 현실성을 획득한다. 상상이 채웠던 틈을 기록이 메우는 지점이다.
관람 동선을 따라가다 보면 칼과 갑옷보다 먼저 한 인간의 병든 몸과 지친 정신이 눈에 들어온다. 반복되는 질병과 체력의 한계, 불면의 흔적은 일기 곳곳에서 확인된다. 가족과 부하의 죽음을 기록하면서도 다음 날의 출정을 준비해야 했던 일상은 교과서적 영웅 서사에서 쉽게 삭제돼 온 장면들이다. 집안에 전해진 편지와 의복, 생활 유물들은 이순신을 추상적인 국가의 상징이 아니라, 가족의 생계와 조직의 책임을 동시에 짊어졌던 한 사람으로 되돌려 놓는다. 이 지점에서 그는 위인이 아니라, 극한의 조건 속에서 선택을 반복해야 했던 인간으로 다가온다.
이 전시가 지니는 문화적 의미는 이순신을 결과의 인물이 아니라 과정의 인물로 제시한다는 데 있다. 그는 위기를 단번에 해결한 영웅이 아니라, 매순간 판단을 기록하며 스스로를 점검했던 존재였다. 난중일기는 전략 문서이자 감정의 기록이며, 책임을 미루지 않기 위한 자기 통제의 산물이다. 기록은 위안을 위한 수단이 아니라, 도망치지 않기 위해 자신을 붙잡아 두는 최소한의 장치였을 것이다.
‘우리들의 이순신’이라는 전시 제목은 영웅의 소유권을 국가에서 관람객에게로 옮긴다. 전시장에 놓인 한 장의 기록은 오늘을 살아가는 개인의 선택과 자연스럽게 겹쳐진다. 누군가에게 그는 조직을 책임지는 관리자일 것이고, 또 다른 이에게는 불합리한 구조 속에서도 자리를 지키는 직업인의 얼굴일 것이다. 이 전시는 존경을 요구하지 않는다. 대신 지금 무엇을 기록하고 있는지, 어떤 판단을 남기고 있는지를 묻는다.
광복 80주년을 맞아 다시 만나는 이순신은 과거의 위인을 호출해 소비하는 방식으로 다뤄지지 않는다. 그는 여전히 불완전한 조건 속에서 결정을 미룰 수 없었던 존재로 현재화된다. 이 전시는 역사적 사실을 나열하는 데서 멈추지 않고, 판단과 책임의 태도를 오늘의 공적 영역으로 끌어온다. 빠른 해법과 강한 리더십을 요구하는 시대에, 이번 전시 기획은 즉각적인 승리보다 판단이 축적돼 온 시간과 끝내 책임을 내려놓지 않았던 태도에 주목한다.
난중일기 앞에 선 관람객이 마주하는 것은 한 개인의 문장이 아니다. 그것은 이 기록을 어떤 기준으로 보존하고 해석해 왔는지에 대한 우리 사회의 선택이다. 이 전시는 감동을 환기하는 데서 멈추지 않고, 국가가 역사와 기억을 어떤 방식으로 관리하고 공론화해야 하는지를 묻는다. 전쟁의 결과를 강조하는 서사 대신 판단의 과정과 책임의 흔적을 중심에 둔 이번 기획은, 공공 전시가 기념을 넘어 성찰의 장으로 확장될 수 있음을 분명히 보여준다.
이순신은 더 이상 영웅 소비의 대상이 아니다. 그는 공공 전시와 국가 문화정책이 지향해야 할 기준의 이름이다. 질문을 던지고, 생각하게 하며, 선택을 요구하는 것. 그것이 오늘 공공 문화정책이 감당해야 할 최소한의 역할이다.
‘카이로 박물관’이 세계에 던진 메시지
11월 개관한 이집트서부 관광거점
유적·유물 서사적 주도권 되찾아
한국도 문화재 회수 장기적 대비를

이미지/구글 제미나이로 생성함
카이로 서쪽 사막 가장자리에 새로운 태양이 떴다. 2025년 11월 1일, 그랜드 이집트 박물관이 문을 연 것이다. 1992년 처음 구상된 뒤 33년, 착공한 지 20년 만에 완성된 이 거대한 건축물은 총 10억 달러 이상이 투입된 대규모의 단일 문명 박물관이다. 일본국제협력기구(JICA)가 약 8억 달러를 차입 형태로 지원했고, 나머지는 이집트 정부가 부담했다. 10만 점이 넘는 유물을 한 지붕 아래 품는 규모도 압도적이지만, 진짜 의미는 그 너머에 있다.
입구에 들어서면 83t짜리 람세스 2세의 화강암 거상이 관람객을 맞이한다. 그 뒤로 펼쳐진 거대한 유리창으로 기자 피라미드가 정면으로 보인다. 그 아래, 처음으로 한자리에 모인 투탕카멘의 5398점 유물이 빛난다. 이집트는 이 공간을 통해 말없이 선언한다. 이제 우리는 우리 땅에서 나온 유물로 우리 이야기를 한다고.
같은 시각, 유럽의 옛 제국 박물관들은 각기 다른 이유로 곤혹을 치렀다. 2023년 대영박물관은 2000점에 달하는 고대 보석과 금장식을 20년간 직원이 훔쳐 이베이에 팔아온 사실이 드러났다. 2년이 지난 지금도 1500점 이상은 행방이 묘연하다. 2025년 10월 19일에는 루브르에서 단 7분 만에 프랑스 왕실 보석 8점이 사라졌다. 베를린의 페르가몬 박물관은 2013년 시작한 대규모 보수 공사로 2023년부터 사실상 폐관 상태다. 당초 2037년으로 잡았던 재개관 목표는 이제 2043년으로 미뤄질 가능성이 커졌다. 한때 세계 문화를 가장 안전하게 보존한다고 자부하던 박물관들이 정작 자신들의 유물조차 지키지 못한다.
그랜드 이집트 박물관은 이와 정반대 지점에서 출발한다. 모든 전시품은 이집트 땅에서 나온 것이며, 그 서사는 철저히 이집트인의 시선으로 재구성된다. 관람 동선은 피라미드를 향해 점점 가까워지도록 설계되어 있어, 마지막 갤러리에 이르면 유리창 너머로 실제 피라미드가 눈앞에 다가온다. 유물과 유적, 과거와 현재가 하나의 시선 안에 들어오는 순간이다.
개관 첫 달, 박물관은 하루 평균 1만9000명의 관람객을 맞이했다. 주말에는 2만5000명을 넘기기도 했다. 정부가 목표로 내건 연간 500만 명은 이미 무난히 달성될 전망이다. 박물관은 단순한 전시 공간이 아니라 카이로 서부 전체를 아우르는 관광벨트의 핵심 축이다. 인근에 들어서는 고급 호텔과 컨벤션센터, 새로 개장한 스핑크스 국제공항, 그리고 아직 공사 중인 메트로 3호선 연장선까지, 모두 하나의 큰 그림 안에 들어 있다.
물론, 완벽하지는 않다. 도심에서 20km 떨어진 위치 탓에 교통 불편은 여전하고, 개관 초기 폭우로 주차장이 물웅덩이가 되어 관람객들이 웃지 못할 해프닝을 겪기도 했다. 일본국제협력기구의 차입금 상환 부담과 외국 자본 의존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도 나온다. 그러나 이런 문제들은 대부분 성장통으로 불린다. 문화유산의 물리적 소유권과 서사적 주도권을 원산지 국가가 되찾았다는 사실, 그것이야말로 2025년 카이로가 세계에 던진 가장 큰 메시지다.
한국에도 먼 이야기가 아니다. 현재 해외에 흩어져 있는 한국 문화재는 약 22만 점에 이른다. 우리는 오랜 세월 돌려달라는 목소리를 내왔다. 이제 그 다음 단계를 준비할 때다. 돌려받은 유산을 어떤 공간에서, 어떤 이야기로, 누구와 나눌 것인가. 앞으로 국립중앙박물관의 보존과 교육 시설 확장, 경복궁 일대를 하나의 문화 벨트로 묶는 도시계획, 제2국립중앙박물관 같은 장기 구상은 모두 그 연장선에서 함께 논의될 수 있을 것이다.
카이로는 이미 답을 보여줬다. 유물의 가치는 그 크기나 숫자가 아니라, 그 유물이 놓인 땅과 그 땅의 사람들이 들려주는 이야기에 달려 있다. 유럽이 과거의 영광과 현재의 균열 사이에서 고민하는 동안, 카이로는 피라미드를 배경으로 조용히, 그러나 단호하게 새로운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그 목소리는 머지않아 세계 곳곳에 닿을 것이다.
※ 본 칼럼은 이투데이에 ‘[이상미의 예술과 도시]’로 연재되었습니다.
https://www.etoday.co.kr/news/view/2531073?trc=sub_list_news